원자로 보존 관련 동아일보(9월 2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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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06-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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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9월 2일자)에 게재된 당 아카데미 임용규 이사장의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 보존 관련' 기사 내용입니다.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 보존하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1950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1958년 원자력법을 만들고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미국 제너럴아토믹스사와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2(TRIGA Mark Ⅱ) 도입 계약을 체결해 1959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원자력연구소에서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1962년 3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이 원자로에서 원자핵 연쇄반응을 일으켜 본격적인 원자력 이용 시대가 시작됐다.
세계 최빈국이던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신설하고 1957년부터 원자력 부문 국비유학생을 선진국에 파견하는 등 원자력기술 인재양성 정책을 파격적으로 추진했다. 연구용 원자로의 가동으로 해외에서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고 귀국한 과학자가 원자력 분야의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원자로에서 생산된 방사성동위원소는 의료 농학 등 각 분야에 보급돼 과학기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을 일깨웠다.
국내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원자력의 모태이자 발상지이다. 첨단과학의 대표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랑할 만한 시설이다. 반세기 전 건설된 연구용 원자로는 인류 사상 세 번째의 불인 ‘원자력’을 단군 이래 처음 우리나라에서 밝힌(핵 연쇄반응시킨) 기념물이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오늘날 세계 6위권의 원자력 발전 국가로 성장했고 현재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해 국내 전력의 40%를 생산한다.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는 기관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 현재 2800여 곳에 이르며 산업, 의료, 농업 분야에서 경제적 이득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다.
정부는 30여 년간 서울에 있던 원자력연구소를 1985년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면서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전체 대지를 포함한 연구소 건물의 매각 계약을 한국전력공사와 체결했다. 두 개의 연구용 원자로는 원자력연구소가 해체해 없앤다는 조건이 계약에 포함됐다. 원자력연구소는 정부 출연금으로 계약 이행을 위한 연구용 원자로 해체 철거를 추진해 1972년에 건설된 연구용 원자로를 지난해 말 철거했다. 공릉동의 구 원자력연구소 터는 한전이 중앙교육연구원으로 사용한다.
원자력계 인사들은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연구용 원자로 보존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아 있는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를 ‘원자력과학문화재’로 지정해 역사의 유물로 남겨야 한다는 건의문에 원자력계 원로 및 관련 과학계 대표, 원자력계 기관장의 서명을 첨부해 보존추진위원회 대표들이 최근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산업자원부 장관, 한전 사장에게 전달했다.
연구용 원자로가 있는 대지는 7000평 정도이고 연구용 원자로의 본체는 수백 t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내진설계가 완벽해 수백 년 동안 원형 보존이 가능하다. 제염작업을 거치면 일반에 공개가 가능하다. 일본도 미국에서 도입한 첫 연구용 원자로의 원형을 보존해 기념관을 만들어 교육 현장으로 공개한다.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보존을 위한 해결의 열쇠는 한전이 쥐고 있다. 한국원자력발전의 조상격인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를 영원히 사라지게 해서야 되겠는가. 현재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보존 문제에 대해 관련기관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 입국을 지향하는 나라에서 ‘제3의 불’을 댕겨 준 연구용 원자로는 소중하게 보호 보존해야 할 문화재임을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하기 바란다.
임용규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 이사장
동아일보 기사 원문 :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9020033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 보존하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1950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1958년 원자력법을 만들고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미국 제너럴아토믹스사와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2(TRIGA Mark Ⅱ) 도입 계약을 체결해 1959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원자력연구소에서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1962년 3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이 원자로에서 원자핵 연쇄반응을 일으켜 본격적인 원자력 이용 시대가 시작됐다.
세계 최빈국이던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신설하고 1957년부터 원자력 부문 국비유학생을 선진국에 파견하는 등 원자력기술 인재양성 정책을 파격적으로 추진했다. 연구용 원자로의 가동으로 해외에서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고 귀국한 과학자가 원자력 분야의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원자로에서 생산된 방사성동위원소는 의료 농학 등 각 분야에 보급돼 과학기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을 일깨웠다.
국내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원자력의 모태이자 발상지이다. 첨단과학의 대표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랑할 만한 시설이다. 반세기 전 건설된 연구용 원자로는 인류 사상 세 번째의 불인 ‘원자력’을 단군 이래 처음 우리나라에서 밝힌(핵 연쇄반응시킨) 기념물이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오늘날 세계 6위권의 원자력 발전 국가로 성장했고 현재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해 국내 전력의 40%를 생산한다.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는 기관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 현재 2800여 곳에 이르며 산업, 의료, 농업 분야에서 경제적 이득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다.
정부는 30여 년간 서울에 있던 원자력연구소를 1985년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면서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전체 대지를 포함한 연구소 건물의 매각 계약을 한국전력공사와 체결했다. 두 개의 연구용 원자로는 원자력연구소가 해체해 없앤다는 조건이 계약에 포함됐다. 원자력연구소는 정부 출연금으로 계약 이행을 위한 연구용 원자로 해체 철거를 추진해 1972년에 건설된 연구용 원자로를 지난해 말 철거했다. 공릉동의 구 원자력연구소 터는 한전이 중앙교육연구원으로 사용한다.
원자력계 인사들은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연구용 원자로 보존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아 있는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를 ‘원자력과학문화재’로 지정해 역사의 유물로 남겨야 한다는 건의문에 원자력계 원로 및 관련 과학계 대표, 원자력계 기관장의 서명을 첨부해 보존추진위원회 대표들이 최근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산업자원부 장관, 한전 사장에게 전달했다.
연구용 원자로가 있는 대지는 7000평 정도이고 연구용 원자로의 본체는 수백 t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내진설계가 완벽해 수백 년 동안 원형 보존이 가능하다. 제염작업을 거치면 일반에 공개가 가능하다. 일본도 미국에서 도입한 첫 연구용 원자로의 원형을 보존해 기념관을 만들어 교육 현장으로 공개한다.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보존을 위한 해결의 열쇠는 한전이 쥐고 있다. 한국원자력발전의 조상격인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를 영원히 사라지게 해서야 되겠는가. 현재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보존 문제에 대해 관련기관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 입국을 지향하는 나라에서 ‘제3의 불’을 댕겨 준 연구용 원자로는 소중하게 보호 보존해야 할 문화재임을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하기 바란다.
임용규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 이사장
동아일보 기사 원문 :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9020033